뮤지컬 캣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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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끝에 뮤지컬 <캣츠> 초연이 있었다
고생 끝에 뮤지컬 <캣츠> 초연이 있었다
2020-09-03

연주회가 될 뻔한 <캣츠>
<캣츠>가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을 꼽는다면 T.S 엘리엇의 부인인 발레리 엘리엇이 아닐까. 1977년 말쯤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T.S 엘리엇의 시집 『지혜로운 고양이를 위한 지침서』에 실린 시에 곡을 붙이기 시작했던 건 개인적인 작곡 실험에 가까웠다. 그러다 뮤지컬 <텔 미 온 어 선데이(Tell Me on a Sunday)>를 BBC 방송을 통해 공개한 한 웨버는 어쩌면 자신의 작곡 실험이 ‘공연’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웨버가 생각한 공연은 뮤지컬이 아닌 텔레비전 방송용 연주회였다. 웨버는 추가로 곡을 작업해 자신의 시그몬턴 축제에 선보였다. 그 자리에 초대받았던 발레리 엘리엇은 웨버에게 남편의 미완성 원고 몇 편을 전달했는데, 그중 하나가 ‘그리자벨라’에 대한 시였다. 비록 미완성 시였지만, 웨버는 자신의 프로젝트가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음을 직감했다. 그렇게 뮤지컬 <캣츠>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

 

가까스로 마련한 투자금
<캣츠>의 프로듀서로 나선 이는 웨스트엔드의 젊은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였다. 매킨토시는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비타> 등을 성공시킨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신작이었지만, ‘시’를 뮤지컬로 만들겠다는 무모한 발상과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의 최연소 예술감독으로 선임될 만큼 능력 있는 연출가였지만 뮤지컬 연출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트래버 넌을 믿고 투자하겠다는 사람은 선뜻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웨버와 매킨토시는 <캣츠>를 포기하지 않았다. 매킨토시는 신문 광고를 내고 소액 투자자를 모집했다. 웨버는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았다. 웨버 입장에서는 모 아니면 도인 도박 같은 투자였다. 웨버의 대출금과 200여 명의 소액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합쳐 겨우 제작비를 마련했다. 결과는 모두가 알 듯 대박이었다.

 


<캣츠> 초연 당시 뉴 런던 시어터

 

극장이 아닌 고양들의 놀이터
<캣츠>의 무대는 기존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 창작진들은 전통적인 프로시니엄 무대가 아니라 중앙에 회전 무대가 있는 원형 극장 ‘뉴 런던 시어터’를 선택했다. 무대와 의상 디자인은 연출 트래버넌과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함께 작업한 적이 있는 존 내피어에게 맡겨졌다. 당시 존 내피어는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 영국 국립 극장에서 작업하며 명성을 쌓았지만 트래버 넌과 마찬가지로 상업 뮤지컬 작업은 처음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대본도 없이 디자인해야 했다. 트래버 넌은 ‘무대’가 아니라 고양이들이 있을 만한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춤이 많은 작품이니만큼 춤을 출 수 있는 공간과 배우들이 등퇴장로도 확보해야 했다. 까다로운 작업이었지만 존 내피어는 멋지게 해냈다. 그는 도시 뒷골목 쓰레기장에서 영감을 받아 무대를 디자인했다. 무대는 세탁기부터 구두, 치약까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 쓰레기로 채웠는데, 고양이 눈으로 본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원래 크기보다 3배에서 10배까지 크게 제작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없애고 최대한 무대와 객석을 가깝게 해 진짜 고양이들의 세계에 놀러 간 것 같은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했다. 전에 없던 뮤지컬에 어울리는 전에 없던 무대였다.

 

불행과 행운의 그리자벨라
<캣츠>의 원작인 『지혜로운 고양이를 위한 지침서』는 다양한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엮은 시집이다. 뮤지컬이 되기 위해서는 개성 강한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트래버 넌은 T.S 엘리엇의 미완성 시와 편지 속에서 그 ‘무언가’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냈다. 젤리클 고양이들의 특별한 축제 ‘젤리클 볼’, 젤리클 고양이들이 새로운 삶을 위해 가는 ‘헤비사이드 레이어’, 한때는 아름다웠지만 늙고 초라해진 젤리클 고양이 ‘그리자벨라’.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캣츠> 이야기의 기본이 되었다. 다양한 예술적 배경을 가진 창작진들이 조금씩 뮤지컬의 틀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뭐 하나 쉬운 게 없었고, 캐스팅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인기 배우 주디 덴치를 그리자벨라로 캐스팅했는데, 개막을 불과 5일 앞두고 부상으로 하차하는 불운을 맞았다. <에비타>에 참여했던 일레인 페이지를 부랴부랴 그리자벨라로 캐스팅했다. 일레인 페이지는 완벽하게 역할을 소화하며 <캣츠>를 자신의 대표작으로 만들었다.

 

불운 끝에 꽃길만 걷게 된 <캣츠>
그리자벨라 배역 교체로 원래 개막일보다 2주 늦은, 1981년 5월 11일 뉴 런던 시어터에서 <캣츠>가 초연됐다. 하지만 폭탄 테러 위협으로 커튼콜 때 모두가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다행히 이 사건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남다르게 요란스러운 첫 공연이 끝나고, 개막을 향한 <캣츠>의 힘겨운 여정도 끝났다. 첫 공연 후 <캣츠>는 말 그대로 꽃길만 걷기 시작한다. 1981년 영국의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즈에서 올해의 뮤지컬상과 안무상을, 이브닝 스탠더드 어워즈에서 최우수 뮤지컬 상을 받았다. 이듬해는 620만 달러라는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대 선매출 기록을 세우며 달리진 위상을 드러냈다. 1982년 토니상에서는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최우수 뮤지컬상을 비롯해 총 7개 부문을 수상했다. <캣츠>는 웨스트엔드에서 21년간 8,950회, 브로드웨이서 18년간 7,485회 연속 공연 기록을 세웠다. 1983년부터는 해외 프로덕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공연되었다. 40년 전, 누구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던 뮤지컬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뮤지컬 중 하나가 되었다.

 

사진출처 | twitter @CatsMus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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