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캣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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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철 수의사가 말하는 뮤지컬 <캣츠>
김명철 수의사가 말하는 뮤지컬 <캣츠>
2020-10-13

글 | 김명철 수의사

 

뮤지컬 <캣츠>를 처음 관람했을 때의 충격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수많은 배우가 각자 개성을 뽐내면서도 고양이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특유의 앙칼진 표정과 사뿐한 움직임으로 그려내는 모습은 고양이 행동 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도 완벽했다. 고양이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실감 나는 분장부터 고양이처럼 우아한 걸음걸이와 몸단장에 빠져있는 모습들까지 실제 고양이들이 내 앞에 몰려다니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전하는 듯했다.

 

T.S 엘리엇의 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이 뮤지컬의 또 하나의 재미 요소는 1년마다 열리는 고양이의 축제인 ‘젤리클 볼’ 일 것이다. 각양각색의 고양이들이 1년에 한 번씩 한 장소에 모인다니 얼마나 귀엽고 발칙한 상상인가? 이 쯤에서 한가지 궁금증이 발생한다. 개와는 달리 단독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고양이들이 ‘젤리클 볼’처럼 현실 세계에서도 한 날 한 시에 모여 있을 수 있을까? 고양이 행동전문가이자 세계 각지의 고양이 마을을 방문해 본 나의 대답은 ‘충분히 가능하다.’이다. 고양이들도 먹이 자원이 풍부한 환경에서는 한 장소에 모여서 영역을 공유하며 살 수 있다. 대만의 허우통 고양이 마을이나 일본의 고양이 섬 아이노시마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다만, 고양이들은 모계 사회이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는 극 중 고양이들의 리더인 현명한 고양이 듀터로너미가 수컷이 아닌 암컷이라는 점이 다를 것이다. 혈연 관계를 중심으로 무리 사회를 형성하는 고양이들은 암컷들만 남기고 수컷 고양이가 성 성숙이 되기 시작하면 무리에서 독립시킨다. 근친교배를 통한 종의 퇴화를 막기 위한 본능이다. 만약 고양이 특성에 맞춰 현명한 고양이 역할에 할머니 고양이가 캐스팅 되면 조금 더 현실적인 뮤지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캣츠>를 보는 내내 마치 진료를 보는 마음으로 극 중 고양이들을 하나하나 관찰해본다. 실제 고양이들이 그러하듯, 저마다 다른 성격과 매력을 지닌 고양이들. 그중 가장 먼저 내 맘을 사로잡은 고양이는 단연 럼 텀 터거라는 고양이이다. 평소 순한 개냥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내 말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유쾌함, 호전성이 강하면서도 사회성 좋은 이 고양이의 연기는 극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중간중간 다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웃음을 선사한다. 원래 야생에서의 수컷 고양이들도 럼 텀 터거처럼 넓은 영역의 암컷 고양이들을 쫓아다니며 끊임없는 구애를 하고 2세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실제로 이런 수컷 고양이들의 영역반경은 암컷 고양이 영역반경의 3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게다가 이런 성격을 가진 고양이의 특징은 사람들에게도 거침없이 다가와 애정 표현을 하며 사람의 마음까지 그 영역 반경을 넓힌다는 데 있다. 무대 위의 럼 텀 터거가 섹시한 움직임과 저돌적인 표현으로 나의 마음을 빼앗아 간 것처럼 말이다.

 

극 중 무리에 해를 끼치는 악당 고양이 맥케버티는 과연 어떻게 탄생하였을까?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성격일까? 자라는 과정에서 어떤 사건에 의한 것일까? 행동학적으로 추측건대 맥케버티는 3개월 미만의 어린 나이에 무리에서 낙오되어 다른 고양이들과 사회화되지 못한 고양이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수컷 고양이이기 때문에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상당한 근육을 소유한 고양이일 것이다. 어려서 충분히 사회화되지 못한 고양이들은 다른 고양이를 만나면 경계심과 공격성을 함께 보이는데, 몸까지 근육질이라니 참으로 위협적인 존재이다. 만약 내가 맥케버티를 실제로 만난다면 단독생활이 가능한 방을 준비하여 격리 생활을 하면서 다른 고양이들과 점진적인 친해지기 교육을 할 것이다. 그러나 행동 교정이 되어 맥케버티가 착해진다면 이 아름다운 뮤지컬 <캣츠>의 줄거리가 바뀌게 되므로 앞으로도 내가 <캣츠>에 행동 전문가로 등장하지 않아야겠다는 혼자만의 다짐도 해본다.

 

도둑고양이 커플은 극 중 뛰어난 훔치기 실력을 선보이는데 이것은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하기에 스스로 먹이를 찾아다니는 길고양이를 연상케 한다. 인간들 근처에 살면서 쓰레기 봉지를 뜯어 먹을 것을 구하거나 사람이 먹기 위해 말리고 있는 건어물을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도둑고양이의 모티브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만약 길고양이 급식소가 충분히 있고 챙겨주는 캣맘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극 중 도둑고양이 캐릭터가 없어졌을 거라는 생각에 아차 싶다.

 

 

위에서 소개한 것과 같이 다양한 고양이 캐릭터들의 매력을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극을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간다.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 곡으로 꼽히는 ‘메모리’의 여주인공 그리자벨라가 그 주인공이다. 극 중 그리자벨라는 어렸을 때는 아름답고 건강한 고양이었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병들고 몸이 불편한 고양이가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길고양이들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심지어 우리나라 길고양이들은 그리자벨라처럼 나이 들 때까지 살아남는 경우도 흔치 않다. 집고양이들의 수명이 15년인 것에 비해 길고양이들은 평균 3년 정도의 짧은 묘생을 살다가 떠난다. 사고나 굶주림, 추위, 중독 등 다양한 이유로 저마다의 짧은 삶을 마치게 된다. 운 좋게 그리자벨라처럼 나이들 때까지 살아 남는다 해도 그녀처럼 어딘가 몸이 불편할 확률이 높다. 요즘은 동물권의 신장으로, 길고양이들의 지위가 이전보다 높아진 것 같기는 하지만, 사회 곳곳에 여전히 고양이에 대한 혐오나 차별, 더 나아가 학대까지 만연한 현실이다. <캣츠>를 통해 평소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이었던 사람들도 고양이의 매력에 눈을 떠 편견이 걷히고 따뜻한 애정만이 그 자리에 남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김명철 수의사는?

수의사이자 칼럼니스트, 애묘인들에게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로 한국 고양이 수의사회 홍보이사로 활동 중이다. 고양이 행동 전문가로 ‘EBS 고양이를 부탁해’에 출연했고 주간동아 등에 칼럼을 기고, 반려묘 관련 서적 ‘미야옹철의 묘한 진료실’을 집필했다. 또한 ‘미야옹철의 냥냥펀치’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반려묘 ‘사모님’과 ‘애기씨’를 직접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네이버 오디오쇼 나우에서 ‘캣토피아’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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